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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쾌청.

쾌청 6화.

by Vㅏ코드 2025. 7. 26.

시간이 빨랐는지, 느렸는지는 모르겠다.

집을 나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떠들고 잠드는 동안, 입학까지 남은 날짜가 아니라 읽은 책의 수를 세고 있었다.

 

"아 맞다. 내일부터 개학 때까지 여기 문 닫아."

마주 앉아 책을 읽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작 소식을 전하는 연희쌤은 차에 도시락을 두고 왔다는 듯 말했지만.

 

"갑자기 왜요?"

 

"무슨 공사를 한다는데? 나도 잘 몰... 앗 뜨거!"

연희쌤은 오늘은 교양 있게 책을 읽어보자며 사온 홍차를 마시려다 혀를 데었다.

 

"진짜 나이가 몇인지..."

 

"넌 어쩌개?"

 

"...뭐 집에 있어야죠."

나는 창밖으로 눈을 흘렸다.

 

"분위기 잡는 거야? 멋있는데~"

쌤은 능글하게 말했다.

나는 소탈하게 웃었다.

 

"쌤은 맨날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재밌지. 책도 차도 과자도."

연희쌤은 말과 손가락을 동시에 놀렸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오는 말벗도. 히히"

 

"쌤 그거 무협소설이죠?"

 

"헉! 어떻게 알았어?"

 

"쌤은 꼭 책 읽고 나면 그 책 주인공처럼 말하잖아요."

연희쌤은 부끄러움을 감추려 팔을 파닥거렸다. 

 

장난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뭐랄까, 행복하다기보다는 즐거웠다.

 

밤이 되고 침대에 누운 나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지금이 2월이니 한 달을 버틸 곳을 찾아야 했다.

아 어쩌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데.

 

집 주변 도서관은 여기가 유일하다.

다른 도서관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가야 했고 용돈을 받긴 하지만 카페를 매일 간다면 금방 지갑이 거덜 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집에 있어야겠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니까 있다 보면 나름 버틸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 애미야, 이게 뭐냐?"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할아버지가 방에 불을 켜고 들어왔다.

엄마가 일어나지 않자 할아버지는 엄마의 다리를 툭툭 쳐서 깨웠다.

 

"또 뭐요."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이것 좀 봐봐. 이 돈은 뭐야?"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할아버지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 들고 손가락을 휙휙 움직였다.

그러고는 할아버지를 옆에 앉히고 거래 내역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대화는 나름 순조로워 보였기에 나는 자는 척을 하려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근데 이 15만 원 뭐지? 아빠 이거 뭔지 알아?"

엄마는 내역을 확인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나머지 것들은 알아냈지만 남은 15만 원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

 

"15만 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할아버지가 날카롭게 대답하자 엄마는 한숨을 쉬며 다시 열심히 내역을 확인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방엔 폰을 두들기는 소리 밖에 안 들려 나는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아빠 15만 원을 매달 여기로 보냈네, 이거 뭔지 기억해?"

엄마의 말에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뺐어 코앞까지 갖다 댔다.

 

"아, 이거 저축 든 거 아니야."

 

"아 그럼 문제없네. 어 다 금액 맞아요."

엄마는 눈을 반쯤 뜨고 다시 이불로 들어가려 했다.

 

"벌써 몇 년째 이걸 들고 있는데 이걸 모르냐 너는."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얼굴에서 밀었다 당겼다 하며 혀를 찼다.

엄마는 침대로 가던 몸을 멈췄다.

 

"아니 그럼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되지 왜 짜증을 내?"

 

"내가 언제 짜증을 냈어?!"

 

"지금도 봐 짜증 내고 있잖아!"

 

"여기 나온 대로 읽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걸 가지고 자는 사람 깨워놓고 뭐하는건데."

 

"아니 그럼 내가 몰라서 와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알았으면 너를 귀찮게 하겠어?"

둘은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충돌하는 두 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웅크렸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사는데 네가 좀 이해를 해야지!"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포기한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오 진짜 괴팍한 노친네."

거실에서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저거 저년 성질머리 하고는."

현관문이 열리고 쾅 닫히는 소리 나자 할아버지는 문 부서진다며 또 소리를 쳤다.

그러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핸드폰을 몇 번 확인하다 욕을 하며 방을 나갔다.

 

어두운 창밖과 달리 새해야진 방 안에 나 홀로 남았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밝은 시야 속에서 나는 고민했다.

지금 일어나서 불을 끄고 다시 누울까 말까.

 

불을 끈다면 내가 안 잔다는 걸 알 테고 그럼 또 괜히 화살촉이 나를 향할지 모른다.

아니 근데 방금 같은 상황에 안 깨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럼 뭐 하나 할아버지는 그런 것까지 이해할 위인이 아닌데.

하지만 방금 할아버지는 방에 들어갔으니 내가 일어나도 모를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더 웅크렸다.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끄고 누웠다.

오늘은 언제 잠에 들 수 있을까?

엄마는 언제 들어올까.

왜 하루도 안 시끄러운 날이 없을까.

신이 있다면 제발 나에게 평온이란 걸 알려줬으면 좋겠다.

 

뒤척이다 힘겹게 잠든 그날 밤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할아버지는 크고 무시무시한 도깨비 같았다.

그 앞에선 공벌래가 된 나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 계속 있다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랬다.

내게 할아버지는 크고, 세고, 무서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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