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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쾌청.

쾌청 5화.

by Vㅏ코드 2025. 7. 24.

새벽 세시.

잠이 오지 않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유튜브에 들어가 알고리즘을 따라 하염없이 그 속을 헤맸다.

그러다 영화 결말포함 리뷰에 정착했다.

스피커 소리는 작았지만 밤이라 괜찮았다.

 

영화 속 주인공 윌은 누구보다 똑똑한 머리와 재치 있고 힘 있는 입담을 가졌지만 그 재능을 술집과 여자에 쏟아부으며 대학교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똑똑하지만 저렇게 사는 건 영화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소한 궁금증으로 영화를 봤다.

어느 날 교수가 복도에 적은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을 들켰는데 그것을 계기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가 그를 제자로 거두면서 영화가 진행됐다.

 

그렇게 주인공은 교수와 문제를 풀고, 삐뚤어진 자신을 고치려는 상담사들의 ptsd를 들먹이며 골탕도 먹이고, 여자친구도 만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거침없는 그의 행보가 나를 더 매료시켰다.

그는 절친한 친구 척도 있었다.

다른 장면들도 재밌었지만 그 둘의 캐미를 보는 게 가장 재밌었다.

 

"교수님들 일은 어때?"

 

"한 50년은 책상 앞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데?"

윌은 척이 일하는 공사판에서 둘은 맥주에 담배를 곁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벌겠네."

 

"실험실 생쥐 꼴이지 뭐."

 

"그 덕에 여기서 탈출할 수 있잖아."

척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더 태울 것도 없어 보이는 담배를 계속 피우고 있었다.

 

"왜 탈출해? 난 여기서 평생 살 거야. 네 옆집에 살면서 애도 낳고 리틀 야구장도 가면서 말이지."

윌은 기분 좋게 건들거리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나 척은 그런 윌을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넌 내 친구니까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 20년 후에도 네가 여기서 일하면서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때리고 있으면,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장난 아니야 진짜 없애버릴 거라고."

척은 어딘가 화나 보였고 윌은 어이가 없었다.

 

"젠장, 뭔 소리야."

 

"봐."

척의 목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들렸다.

 

"넌 우리에게 없는 재능을 가졌어."

 

"하 씨. 왜 다들 나한테만 이래라 저래라야, 난 이 일이 좋다고."

윌은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척의 눈을 보지 않았다.

 

"아니 이 씹새끼야. 이건 널 위한 말이 아니야."

욕지거리를 하는 척의 눈은 윌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이건 날 위해서라고."

그의 눈에 자신이 비칠까 윌은 얼굴을 아래로 내렸다.

 

"50이 돼도 난 공사판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넌 지금 당첨될 복권을 깔고 앉고서는 겁쟁이처럼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라고. 병신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걸? 여기 있는 모두 마찬가지고. 네가 여기서 20년이나 썩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시간 낭비는 덤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윌은 표정을 굳혔다.

 

"몰라?"

 

"어, 넌 몰라."

 

척은 담배를 한숨 들이켰다.

입가로 새어 나온 연기가 구름을 타고 흘러갔다.

 

"좋아. 하지만 이거 한가진 알아.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널 깨우고, 같이 나가서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근데.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 언젠지 알아?"

척은 미래를 그리는 것처럼 담배를 쥔 손을 움직였다.

 

"내가 차를 세우고 네 현관까지 걸어가는 10초 정도의 시간이야. 내가 너희 집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

그의 입술이 잠깐 달싹였다.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윌을 보는 척은 옅게 웃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 거야."

척은 맥주를 홀짝이고 다 태운 담배꽁초를 멀리 던졌다.

 

탁.

 

스페이스를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어느덧 떨어진 눈물이 장패드를 적시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쓸어도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민철아..."

흐느끼는 목소리는 발음을 다 뭉개었다.

 

"난 행복하지 않아..."

책상에 기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인사를 하고 떠나서인 걸까.

만약 지금도 네가 내 옆에 있었다면 하루하루가 잠깐씩은 즐거웠을 텐데.

 

없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꿀리지 않고 당당할 재능도, 날 발견해 줄 교수도, 나보다도 내 편인 친구도.

부러웠다.

윌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하하."

마른 웃음이 나왔다.

청승맞은 게 네가 보면 질색할 것 같았다.

 

"진짜 연애를 하던가 해야지. 전여친 그리워하는 애새끼도 아니고. 이러니까 애들이 게이라고 놀리던 거 아니야."

이번엔 윌처럼 말했다.

엄지로 대충 눈을 닦고 마저 영상을 틀었다.

이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졌다.

 

벌컥.

 

"이 시간에 뭐 해."

일그러진 얼굴로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쉽다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이제 자려고요."

할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웃으며 컴퓨터를 끄고 자리를 일어났다.

 

"쯧쯧쯧 누굴 닮아서 저러나 몰라. 말하는데 표정 하고는."

보지 않아도 나를 찌르는 손가락질이 느껴졌다.

 

나 웃고 있지 않았나?

 

아마 내 표정은 감정소모 절전모드에 들어가기 위해 전원을 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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