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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쾌청.

쾌청 1화.

by Vㅏ코드 2025. 7. 15.

"그거 알아?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세포라는 것들은 3개월 정도밖에 못 산데."

우리는 들판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하늘에도 구름만큼은 왜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럼 죽는거 아니야?"

나는 민철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목근육이 뻗뻗하게 부어 움직이지 않았다.

 

"바보야 그럼 우리도 이미 죽었겠지."

민철이는 까칠하게 핀잔을 줬다.

 

"...그랬으면 좋았겠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퍼렇게 멍든 눈덩이 때문에 검은 하늘도 반밖에 안보였다.

옆에서 달싹거리는 소리가 할 말을 찾는 것처럼 들렸다.

 

"쨋든 그래서 다른 세포들이 다 죽기 전에 새로운 세포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데."

민철은 가끔씩 이렇게 신비한 지식들을 말해줬다.

어디서 들었는지, 진짜인지도 잘 몰랐지만 나는 그저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좋았다.

시간이 빨리 가니까.

 

"그럼 3개월 전 우리 몸은 우리 몸이 아니야?"

내가 생각해도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풀잎도 비웃는지 팔을 간지럽혔다.

 

"...넌 어떨 것 같은데?"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또 맞은 머리가 계속 울려서 왜 그런 걸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지금도.

 

"난... 아니었으면 좋겠어." 

하늘은 검고 또 검었다.

빛나는 것은 별이 아니라 검은 도화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 같았다.

 

"3개월 전도, 1년 뒤도 여전히 나라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아."

뒤로 갈수록 말은 흐려졌다.

너에겐 들렸을까?

 

"넌?"

문득 네가 무슨 표정일지 궁금했다.

몸을 일으킬 힘은 없어 눈동자만 힘겹게 굴렸다.

 

"난 그래도 똑같았으면 좋겠어."

 

"왜?"

퉁퉁 부운 눈이 민철의 얼굴만을 가리고있었다.

 

"그래야 우리가 그대로 일 테니까."

너도 나를 바라본다.

보이진 않았지만 바람과 잔디가 알려주었다.

 

"약속해. 하나가 죽기 전까지 먼저 죽지 않기로."

누워있는 민철의 손이 새끼손가락만 남기고 접혔다.

 

"우린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죽는 거야."

자세히 보니 엄지도 접히지 않았다.

너도 힘이 드나 보다.

 

"응 약속."

우린 손가락을 걸었다.

어린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행동이었다.

무슨 뜻이냐고?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민철과 나는 맨날 붙어 다녔다.

학교에서도 학교가 끝나고도 언제나 함께였다.

정확히는 우리만 함께였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서로밖에 없었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교시간이 되면 학교 뒷문에서 만났다.

정문은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의 손을 잡고 행복한 미소로 집을 가는 애들이 보이면 이따금씩 우리도 손을 잡았다.

 

한 번은 그걸 본 같은 반 남자애가 게이라고 놀렸다.

그것은 상당히 진귀한 경험이었다.

소문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으니 말이다.

쓸쓸함을 감추기 위했던 우리의 행동은 아이들의 입에서 질겅질겅 씹혀 더러워졌다.

 

"게이다!"

지나가던 남자애가 내 앞에서 멈춰 서더니 일그러뜨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징그럽게 뭐 하냐? 네들 사겨?"

초등학생의 깡깡한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처음엔 가만히 있으면 사라질 거라 믿었지만 날이 갈수록 부풀려지기 바빴다.

 

"야 게이들! 우리 엄마가 네내랑 가까이 있지 말래. 이상한 거 옮는다고."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던 나와 민철이의 앞에 남자애 세 명이 몰려와 키득거렸다.

 

"쉬는 시간마다 지겹지도 않냐?"

민철이는 한심하단 듯이 게네들을 쳐다봤다.

 

"요~ 애인이라고 커버 치는 것봐."

깔깔깔 웃는 소리에 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깝치지 말고 꺼져."

민철이는 주먹을 쥐며 애들을 째려봤다.

 

"뭐래 너나 나대지 마 엄마도 없는 게."

 

퍽!

 

시작은 순식간이었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민철은 가운데 있던 남자애한테 달려들었다.

어깨로 밀쳐 바닥에 눕히고, 그 위를 올라타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다시 말해봐. 뭐?"

 

"아아아!  자, 잠깐."

말을 끝메치기 전에 민철의 주먹이 망치처럼 앞니를 강타했고,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파인 손에서 피가 튀겼다.

 

"그, 그마..."

손이 넝마가 돼도 민철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애들이 민철의 팔을 붙잡고 떼어내려 했지만, 민철은 머리를 들이받아 떨쳐내고 낭심을 걷어차버린 뒤 다시 누워있던 애 위로 올라갔다.

피와 눈물과 이빨이 사방으로 날렸다.

 

"미, 미아내! 내가 자모해써."

남자애는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사방이 조용해지고 제발 그만하라는 애원의 목소리와 헉헉대는 민철이의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음에 또 그러면 죽일 거야."

민철은 멱살을 쥐어 잡고 부딪힐 듯 얼굴을 들이밀어 말했다.

피투성이인 얼굴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민철은 머리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꽂았다.

 

우린 그날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달았다.

그 뒤로도 한두 번 정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민철이는 나를 지켜주고 악의 무리를 무찔렀다.

그렇게 민철이는 내 마음속 우상이 돼있었고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민철이를 무서워했다. 

아마 오직 나만이 떨리는 민철이의 어깨를 보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고 내 옆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민철은 이듬해 겨울 내 곁을 떠났다.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러웠고 그건 우리가 예측하지도, 통제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우린 견우와 직녀처럼 해어졌다.

 

"약속 기억하지? 먼저 죽으면 안돼."

 

"응..."

 

"...또 봐."

 

다른 점이 있다면 하늘은 둘의 만남을 허락했지만 우리에겐 그러지 않았다는 부분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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